제78회 칸영화제 초청작 중 한국 장편영화는 없었다. 그럼에도 본인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서사를 완성해 칸의 스크린을 채운 두 명의 한국 영화인을 만났다. 영화 축제가 화려하게 조명하는 부문의 바깥에서 이야기의 힘을 증명한 영화 <첫여름>의 허가영 감독과 나눈 대화.

칸영화제 CANNES 허가영 첫여름 라 시네프

허가영 감독

손녀의 결혼식보다는 남자 친구 ‘학수’의 사십구재에 가고 싶은 노년 여성 ‘영순’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영화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첫여름>으로 제78회 칸영화제를 찾았다. 영화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칸영화제의 ‘라 시네프’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1등상을 수상했다. 이후 파리의 독립영화관 팡테온 시네마에서 다시 한번 관객을 만났다.

올해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1등의 영예를 안았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신기할 정도로.(웃음) 그때 느낀 감정이 너무 거대해 지금도 소화하는 과정에 있다.

수상 소식이 발표된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나?

올해 라 시네프 부문에 자신의 작품을 올린 16명의 감독 중 아시아인이 4명이나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례적인 일인데 3등은 일본과 에스토니아 감독에게, 2등은 중국 감독에게 돌아갔다. 나는 당연히 아니겠구나 싶어 김시진 촬영감독과 “됐다, 술이나 마시러 가자” 하면서 웃고 있는데, 1등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때부터 촬영감독을 포함한 크루들 모두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러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 중에 내가 깊이 존경하는 마렌 아데(Maren Ade) 감독이 있어 더욱 벅차고 떨렸다. 영어로 더듬더듬 소감을 말한 뒤 현장에 함께 있던 크루들 곁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웃음)

감독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처음 경험한 칸영화제 현장은 어땠나?

신기했다. 쿠엔틴 타란티노랑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엠마 스톤을 보고. 한편으론 영화제가 너무 화려해 상처받은 순간도 있었다. 낮은 곳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의 있는 사람들이 조명받는 자리라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다. 물론 영화인들에게 칸은 꿈의 무대다. 나 또한 또래 감독들을 만나 소통하면서 큰 자극을 얻었다. 무엇보다 기쁜 건 관객을 만나는 일이었다.

칸의 관객에게 <첫여름>을 선보이며 어떤 감정을 느꼈나?

상영 전 발표를 한 뒤 앞줄에 앉아 영화를 함께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신나게 웃고 격하게 울어주더라. 계속 고개를 돌려 관객의 얼굴을 지켜봤다.(웃음) 창작자로서 관객의 날것 같은 반응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다가와 소감을 말해주었는데, 세계 각지에서 온 할머니들이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며 고마움을 전한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첫여름>에 담긴 이야기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어릴 때 외할머니와 함께 산 시기가 있었다. 당시 내게 할머니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나를 사랑이 아닌 무관심이나 질투의 시선으로 본다고 느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진 채 지내다가 대학에서 노인을 인터뷰하라는 과제를 받아 처음으로 할머니와 제대로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여쭤보니, “요즘 남자 친구가 있는데 연락이 안 돼 속상해서 잠을 못 잔다”고 하셨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5~6시간 동안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의 연애담을 듣게 되었다. 그때 ‘나는 할머니를 한 명의 여자로 본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른 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사십구재에 참석해 불경독송을 들을 때 할머니가 절에서 춤추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만약 내가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든다면 이 장면을 꼭 구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첫여름>을 만들기 시작한 계기다.

이번 영화를 통해 노인 여성의 사랑과 욕망을 다루며 특히 주목한 점이 있다면?

사랑과 성적 욕망을 느끼는 건 특권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지 않나. 사회가 노인 여성의 욕망을 제대로 인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꼭 말하고 싶었다. 최근 영화가 여성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그린다는 생각을 했다. 욕망을 억누르거나 크게 폭발시키거나. 한데 그 사이에 다양한 욕망의 결이 분명히 존재한다. 작고하신 할머니도 그렇게 연애하고 춤을 추시면서도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셨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며,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노인 여성 캐릭터 영순을 만들어갔다.

“노인 여성이 봐도 상처받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쳤을 것 같다.

맞다. 가짜 같은 영화를 만들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내가 젊은 여성이라 노인 여성의 삶을 직접 경험해볼 수 없다는 점이 큰 어려움을 안겼다. 여성 노인의 말투, 섹스 이후의 신체적 반응 등을 몰라 막막했는데, 여러 노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점점 알아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카바레를 찾아가 춤을 즐겨 추는 노인들과 친해져서 그분들을 영화의 보조 출연자로 모시기도 했다.(웃음) 조사와 답사뿐 아니라, 배우들에게서 얻은 지식도 도움이 되었다. 허진 선생님이 영순 역을 맡아 주셨는데, 함께 작품을 만들면서 대사나 상황 등을 수정해나갔다.

허진 배우와 함께한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영순의 분위기를 지닌 70대 여성 배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허진 선생님이 젊은 시절에 출연하신 작품과 영화 <딸에 대하여>를 통해 그분의 연기를 접했다. 이후 시나리오를 드리고 미팅을 잡았는데, 선생님이 몸에 딱 붙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오셨다. 그 차림으로 대본을 리딩하는 선생님이 딱 영순 같았다. 그때부터 이번 작품에 함께해달라고 빌기 시작했다.(웃음) 영순이란 캐릭터에 애정을 많이 느껴 출연을 결심하신 게 아닐까 싶다.

허진 배우와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땠나?

연애하듯이 작업했다. 지독하게 서로 사랑했고, 미워하기도 했다.(웃음) 선생님과 대본 리딩을 하기 위해 매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꽃을 사 들고 집 앞에 찾아간 적도 있다. 베테랑 배우를 대하는 신인 감독으로서 어려움과 무서움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런데 허진 선생님이 말씀은 “나는 두 테이크 이상 안 간다”라고 하시면서도 막상 현장에 오면 열 테이크나 찍을 만큼 열연해주셨다. 담배 피우는 신을 촬영할 땐 한 갑을 비우시기도 했다. 그만큼 내 디렉팅을 존중해주셨고, 능동적으로 임하며 영화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주셨다. 나도 감독으로서 배우와 캐릭터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작업을 많이 했다. 첫 만남 때 입으셨던 티셔츠를 촬영할 때 입어달라고 부탁하는 등 허진 선생님과 영순이 동화되는 순간의 자연스러움을 노렸다. 이런 식으로 선생님과 소통한 덕분에 작품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진심으로.

다른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 또한 재미있었다. 칸영화제 수상 이후 나에 대한 이야기만 많이 한 것 같아 다른 배우들과의 일화도 꼭 언급하고 싶다. 먼저 영순의 남편 ‘경철’ 역으로 출연한 장경호 배우는 사실 내가 자주 들르던 편의점 사장님이다. 경철은 가부장적인 남성이지만 그 또한 한국 사회제도의 피해자라고 생각해 악한 인물로만 그리고 싶지 않았는데, 사장님의 얼굴이 그 역할에 제격일 것 같았다. 흔쾌히 함께해주셨고, 연기가 본업이 아닌데도 정말 잘해주셨다. 또 영순의 남자 친구인 학수를 표현한 정인기 선배님은 “내가 해석한 학수는 한량 같은 인물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주셨는데, 그 덕분에 캐릭터와 더 어울리는 담백한 의상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그외에도 좋은 배우들을 많이 만났다. 신인 감독으로서 속성 과외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웃음)

이번 영화를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지점은 무엇이었나?

이 영화는 절대 로맨스로 보이면 안 된다는 것. 영순이 추는 춤은 남자 친구가 아닌 자신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감각이 영순의 춤에 담기기를 바랐다. 작품 속 영순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사회로부터 빼앗긴 것들을 되찾고, 열정적이고 활기 찬 에너지로 충만한 여름 같은 날들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이 영화에 <첫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작고한 할머니가 <첫여름>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할머니랑 친하게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늠이 되지 않는다.(웃음)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든다. ‘만약 할머니가 <첫여름>을 좋아하지 않으셨다면, 내게 상이 아닌 벌을 주시지 않았을까?’ 지금 내가 새롭게 겪고 누리는 것들이 있으니 마음에 들어 하신 것 같다. 앞으로의 행보도 지지해주시지 않을까 싶다.

이번 작품 이후 어떤 이야기를 선보일지 궁금하다. 여성 서사를 계속 다루고 싶다는 생각도 있나?

아직은 모르겠다.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작업에 어려움을 느끼긴 한다. 한데 그건 내 역량을 더 키워가며 극복해야 할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일단 현재 내 안에 있는 서사들은 대부분 여성의 이야기다. 베이스기타를 치는 중년 여성, 임신 중단 약을 파는 어린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준비 중인 시나리오의 인물도 흥미롭다. 스스로를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그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들을 좋아하고,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내 화법이기도 하다. 10개의 사건을 만드는 것보다 10명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사람들을 만나면서 큰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낀 기억이 많은데, 그 시간을 통해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를 접하고 모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감독으로서의 내 가치관에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다.

감독이라는 꿈을 키우고, 영화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0대 시절의 나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만성적 우울감을 지닌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사회의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그때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유일한 소통 창구가 글쓰기였다. 당시 쓴 글의 내용과 관련한 영상도 만들었는데, 그 작업이 참 재미있었다. 게다가 한때 음악감독을 꿈꿀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사진과 미술도 좋아했다. 이러한 관심사가 모이면서 자연스레 영화와 가까워졌다. 그러다 20대 중반 무렵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미련이 클 것 같은 생각에 본격적으로 감독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영화를 통해 평소에 하지 못한 말들을 할 수 있고, 그 말이 관객에게 전달되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 지금도 참 좋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만큼,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수상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2년 안에 장편영화를 찍는 게 목표”라고 했다.

수상 직후 한 인터뷰라 패기만만하게 한 말 같기는 하지만(웃음) 이 영광을 빨리 잊고, 장편영화를 마구 찍어보고 싶다. 보다 긴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면서 다작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많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더 자주 겪어야 하겠다.

그 과정이 무척 힘들다. 나를 도려내는 시간이라고 느낄 정도로. 밤새 작업을 하면서 ‘이토록 괴로운 짓을 왜 계속하고 있나’ 하며 한탄한 적도 많다. 한데 영화가 그만큼 중독적인 작업인 것 같다. 영화의 세계에 한번 발을 들이면 벗어나기 어려운 듯하다. 수많은 스태프와 공동 작업을 하다 보면 ‘사람 독’이 오른다고들 하지만,(웃음) 그 시선과 마음이 모여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지 않나. 그 사실이 사랑스럽다. 감독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DNA가 섞여 완성되는 영화가 참 인간적인 예술이라고 느낀다. 고통스럽지만 재미있게, 성취감을 느끼면서 영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현재 감독으로서 품은 고민이 있다면?

영화감독이 굉장히 큰 권력을 가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극장에서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는 일이 관객과의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선언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정말 많이 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웃음)

오래 붙들어야 할 거대한 고민인 것 같다. 그 고민에 대한 현재의 답은 무엇인가?

그만큼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 관객이 시간과 돈을 들여 극장을 찾아오는 이유는 일상에서 접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관객이 평소 마주할 기회가 적은 사람과 경험을 영화 안에 폭넓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회의 면면을 조명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확장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영화를 본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며 저마다 질문을 품을 수 있도록 말을 건네고, 이를 통해 개인의 삶에 무언가를 미세하게나마 남기는 것. 그게 현재의 내가 믿는 영화의 힘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이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기도 하나?

그렇다. 연출자라면 누구든 그 바람을 은밀히 품고 있지 않을까?(웃음) 창작은 결국 목소리를 내는 일이지 않나. 그 목소리가 현대사회에,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모든 예술가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