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티스트, 26년 간 우리에게 유효한 목소리. 박효신과 도쿄에서 보낸 낮과 밤. 낯선 도시 위, 그와 천천히 헤매이며 사유한 열 시간의 기록.





도쿄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어요. 짧은 체류 일정이었지만 어떤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나요?
제 기억에 이렇게 일과 관련해 도쿄에 머무른 게 오래간만이었어요. 가깝지만 다른 분위기가 있잖아요. 좋았어요. 짧았지만.(웃음)
저의 감상은.(웃음) 그날 도쿄가 추웠잖아요. 이동도 많았고요. 쉽지 않은 상황인데도 무던하고 담담하게 곁에 있는 스태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더라고요. 촬영이 끝난 뒤에는 평소 좋아하는 식당을 예약해 모두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고요. 하루 동안 저는 박효신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떤 태도로 동료를 대하는지 조금 본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어릴 때는 지금만큼 느끼지는 못한 감정들인데요. 오래 이 일을 하고, 시간을 쌓다 보니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요. 제가 아티스트로서 완벽히 준비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100% 갖춰져 있지 않을 때도 많아요. 그 부족함을 스태프들이 온전히 만들어주고 채워주잖아요. 고마울 수밖에 없죠. 저 때문에 다들 고생하는데 빛은 또 제가 다 받고요.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이 애정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런 애정 어린 수고들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도쿄에서 본 선선하고 품 넓은 모습과는 달리 음악을 대할 때만큼은 집념과 예민함, 엄중한 책임감을 지닌 아티스트로 익히 알려져 있어요. 공연 준비나 녹음 과정에서 자신을 혹독하게 쓰죠. 한 곡을 녹음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지에 대한 증언이 꽤 많더라고요.
저 자신을 노출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할 자리가 많이 없다 보니 어떤 일화들로 인해 뭔가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요.(웃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거든요. 저는 저를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그러니 내 장단점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한 번 더 노래를 불러보고 녹음하면서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가려보려 하는 거예요. 그 비율을 따지자면 단점을 커버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죠.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과정일 수 있겠지만,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열심히 하는구나가 되고요. 한데 저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기도 해요. 노래 한 곡 끝내고 나면 죽을 것만 같고, 내 인생의 마지막 노래인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지만, 하다 보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지금 내가 여기서 이 정도에 만족하면 과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박효신일까?’ 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되죠. 어떻게 보면 그 선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게 힘들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저에게 굉장히 좋은 동기예요. 큰 에너지를 쓰게 하는. 그래도 감사한 건 제가 어렵게 다 표현하지 않아도 스태프분들이 알아줘요. 그 마음을 알고, 서로 주고받는 게 있으니 힘내서 할 수 있는 거죠. 다른 의도 없이 그뿐이에요.
매 순간 내가 나를 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제 쪽에서 나라는 사람을 ‘나는 이 정도야’ 하고 잡아놔도 사람들이 저를 다른 선상에 만들어놓으면 ‘나 저기 못 가는데…’ 하다가도 막상 작업할 때는 그 생각이 박혀 있죠. ‘그래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바라봐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데 내가 이 정도 노력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완벽’이라는 말의 의미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이잖아요.
그 말의 함의가 과거와 달라졌다고 느끼기도 하나요? 음악을 대하는 방식과는 다른 답이 될 텐데요. 생각해보면 이전에는 지금보다 욕심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어요. 저는 욕심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요. 어릴 때는 그게 과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적당히 잘 덜어낸 것 같아요. 이제는 거울을 볼 때나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내가 지금 제자리에 잘 있나’ 하고 확인해요. 제자리에 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내가 지금 이쯤이면 다음에는 여기에 도달해야 하고, 계획한 대로 어디로 향해야 한다며 챌린지 하듯 살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포기하지 않고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등 두드려주고 싶어요. 길을 잃지 않고, 내 자리가 여기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고 완벽하다고 느껴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유독 어떤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나요?
다른 일을 해보지 않았으니 오직 제 경험으로만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 일은 여러 면에서 균형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적당히가 없어요. 조금만 나태하고 다른 생각을 해도 결과물에 오롯이 티가 나거든요. 그러니 멈출 수가 없고, 공연이든 뮤지컬이든 앨범이든 발표 일정이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어떻게든 이걸 잘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히게 돼요. 다른 것은 보지 않고, 내 삶의 많은 것을 외면한 채 오직 눈앞의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앞뒤 안 가리고 몰두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과물을 내놓고 나면 공허하고 허탈할 때가 많아요. 무언가를 크게 잃어버린 것만 같고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 모든 결과에는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더군다나 이 결과물로 인해 대중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할지, 내가 전보다 좋았는지 혹은 못하게 되었는지 등의 말들이 제게는 무척 힘든 이야기들이고요.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순간들이 올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던 순간들이 고맙죠. 그럼에도 잘 마치고 났을 때 ‘나답게 잘했다. 사람들이 좋아한 것만으로도,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하고 스스로 토닥인 순간들에 고마워요.





박효신이라는 아티스트의 시간은 7집을 기점으로 크게 나뉘죠. 위로와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대두한 것도 이때부터고요. 무수한 명곡 중에서도 유독 7집의 ‘숨’ 뮤직비디오 영상에는 댓글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내밀한 사연과 일상을 공유하더라고요. 음악이 할 수 있는 위로의 선순환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7집은 저도 가장 아끼는 앨범인데요. 제게 터닝 포인트가 돼준 앨범이에요. 7집 전후의 삶이 당시 인생에서 높고 낮음이 가장 심하게 움직일 때였어요. 그래서 무엇보다 나를 붙잡아야 했던 시간이었죠. 어느 때보다 나에게, 나에 대해 정확히 질문하고 대답해야만 했어요.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고 싶은 사람인지’ 등의 질문을 하며 만들어간 앨범이에요. 마냥 씁쓸하지만은 않은 건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삶이 힘들다고들 말하는데, 그 말보다 우리가 더 힘든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된 거예요. ‘숨’도 큰 주제를 가진 곡은 아니에요. 당시 여러 일을 겪으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한숨이라 해도 내가 이렇게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고맙다, 이렇게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다행인 삶이다 하는 감사함에 만들어간 곡이에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혼자 자문자답하고 다시 반문하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렇게 만든 앨범이라 많은 분들이 공감할 요소가 조금 더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난 12월 싱글 ‘HERO’를 발표하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가 클수록 그걸 담을 곡을 만드는 시간은 길어진다’는 문장을 썼죠. 음악을 완성하는 과정이, 마음을 온전히 담는 과정이 점점 더 어렵다는 말로 전해집니다.
라디오에서 이야기했듯이 ‘HERO’는 은퇴 곡으로 써놨던 곡이었어요. 한계점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막상 한계임을 느끼니까 저도 모르게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음악을 떠나서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떤 게 나답게 사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감사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데, 줄 수 있는 게 결국 또 노래밖에 없더라고요. 그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그럼에도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이라는 생각에 차분한 마음으로 곡을 썼던 것 같아요. ‘나는 이제 끝이야’ 하며 마냥 슬펐던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좋은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곡을 다 써두었다가 시간이 지나며 한계라고 느꼈던 감정들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다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계기가 오니 이 노래가 먼지 쌓인 노래처럼 되더라고요.
음악이 계속 음악을 하게 하는 거죠.
맞아요. 그게 참 아이러니하죠. 어릴 때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듦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가장 힘든 순간들이 따라오는 거라고 당연하게 여겨요. 그래야 가장 좋은 것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박효신에게 좋은 음악 혹은 좋은 노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아직 유효한가요?
가장 어려운 질문이죠.
자문하기도 하나요?
저를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안 하려고 해요. 좋은 음악, 노래라는 것을 규정하고 나면 저는 그걸 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하고 스스로를 배제해버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하려 해요. 때때로 만들어놓은 것들을 버릴 때가 있어요. 그 기준은 당시의 내가 솔직하지 못했을 때예요. 스스로를 최대한 믿기 위해서, 믿고 싶기 때문에 솔직해야 해요. 저는 온전히 나를 믿어야 결과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 아마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막힐 거예요. 저는 담대한 사람이 아니고, 두려워하는 것도, 겁내는 것도 많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되면 어딘가로 숨게 될 거라는 걸 알아요.
25년의 시간을 지나오며 얻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깨달음으로 들립니다.
맞아요. 인터뷰의 처음 대답들과도 이어지는데요. 스스로에게 솔직한 채로 제자리에 잘 있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성공의 기준이 되었어요. 누군가는 ‘도전 의식이 없나?’ 할 수 있겠지만 도전이라는 건 이미 너무 많이 해온 거예요. 뮤지컬이 그랬고요. 제 성격에 무대에서 연기를 한다는 건 당시에 지나친 욕심이었고, 도전이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