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20년 후에, 지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광기와 분노로, 불온한 언어로, 그렇게 온몸으로 시를 쓰는 여자.
최승자 시인의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시 세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찌기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여자가 있다. ‘깨고 싶고 부수고 싶고 울부짖고 싶고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고 싶’(‘나의 詩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詩’)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묘비처럼 외로웠”(‘올여름의 인생 공부’)다고, “아무도 나의 손을 잡아 일으키지 않”(‘슬픈 기쁜 생일’)는다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 1979년, 처음 문단에 등장한 최승자 시인은 자신의 삶에 짙게 깔린 어둠을 그대로 토해내 왔다. 사랑의 비극성, 삶의 본질적인 허무와 공허, 살아있다는 고통, 죽음을 향한 충동까지.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등 총 8권의 시집을 펴냈고, 다섯 번째 시집 <연인들>을 펴내던 중 조현병을 앓게 되어 치료와 회복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시를 썼다.
불온함으로
“마른 빵에 핀 곰팡이 / 벽에다 누고 또 눈 오줌 자국 /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일찌기 나는’).
최승자의 시에는 누군가는 입에 담고 싶지 않다고 말할, 불온한 언어가 있다. 삶이 만들어내는 쓰레기, 피와 땀과 정액, 오물과 벌레…. 시인은 이와 같은 말을 피하지 않는다. 도리어 비천하고 오염된 언어로 자신을 빚어 표현하며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여성상에서 추방되었던, 비정상성을 시 안에 불러들인다.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던 감각과 말을, 드러내선 안된다고 여겨지던 여성의 욕망을, 여성의 언어로 시 안에 그려내며 더 진실한 자아에 다가가려 한 것이다.
온몸으로 글 쓰기
엘렌 식수는 말한다. “여성은 자기 육신을 글로 써야 한다. 여성은 난공불락의 언어를 창안해 내야 한다. 칸막이들, 계급들, 그리고 수사법들, 규칙과 코드들을 무너뜨리는 언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메두사의 웃음>) 그의 말처럼 최승자는 여성의 육신을 글로 썼다. 여성의 자궁을 무덤에 비유하고(‘여성에 관하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 균처럼 너에게 가겠다 말하고(‘네게로’), 남자에게 버림받고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려는 여성을 그려냈다(‘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최승자의 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생명을 잉태하는 행복, 자애로운 모성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비참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처럼 최승자가 여성의 몸과 존재를 들여다보며 ‘육체적 글쓰기’를 할 때, 이는 타자화된 여성상을 찢어발기는 결과를 낳는다.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가부장제가 정의한 이상적인 여성상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믿어 보는 것


어둡고 비참한 그의 시 세계를 보며 누군가는 오로지 절망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냐고, 분노와 비참으로 가득한 글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시에 담긴 절망의 언어는 오로지 부정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라고 선언하면서도, “한판 인생 재미있게 풀려주지 않을 바에야 먼저 깽판 쳐버리겠노라”라고 말했다.(<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그는 절망과 죽음으로 은신하는 대신, 번번이 삶으로 돌아 나왔다. 그의 시 속에 담긴 어둡고 또 어두운 그 언어, 그것들은 결코 절망으로 멸망하지 않는다. 도리어 삶을 향해 짙게 밴 애착, 더 나아가 집착이 되어 버린 그 마음을 강렬하게 감각하도록 한다.
결국 쓸 수밖에 없는 사람
최승자 시인에게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자신의 수필집을 통해 말했다. 자신은 “시에 대한 신앙도 믿음도 열정도 없고, 시를 쓰고 나면 다시 읽어보기도 싫고 시를 쓰고 나서도 마뜩지가 않고, 그러면서도 뭔가 미진하고 뭔가 아쉬워서 뭉기적뭉기적 시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시인”이라고 말이다. 쓰기에 대한 사랑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결국 문학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 사람. ‘병세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모조리 손을 뗐지만 시는 그대로 쓸 것’이라 말한 사람. 그리고 “쓴다는 것,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더라면 / 내 삶은 아주 시시한 의미밖에 갖지 못했으리라는 것”(‘워드프로세서’)이라고 적었던 사람.
그렇게 최승자라는 한 여성의 생이 눅진하게 배어 있는 시들은 수많은 여자의 생에 가닿아 왔다. 아픔을 아픔이라 말하고, 고통을 고통이라 말하는 것. 전형적인 여성상을 부수고 어둡고 현실적인 여성의 모습을 시의 전면에 드러내는 것. 삶의 비애를 토해내면서도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읊조리는 것. 그의 시 덕분에 우리는 믿을 수 있게 된다. 절망은 멸망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산다는 건 아슬아슬할 지라도 결국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